할아버지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어요
어느 날 아침, 할아버지가 아이를 보더니 “프로스퍼!”라고 부르며 반겼어요.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프로스퍼는 전쟁터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 동생 이름이거든요. 아이를 동생이랑 착각한 할아버지는 아이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은 진짜 오랜만이었죠. 할아버지가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잃어버린 동생을 만난 줄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는 좀 놀라고 당황하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제 아이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할아버지의 기억이 지워질수록 또렷해지는 사랑
치매는 ‘큰 저택의 전기 차단기를 하나씩 내리는 것처럼 뇌의 기능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기억이 조금씩 지워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심해지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할아버지처럼요.
하지만 치매에 걸려도 이성적인 기억을 잃어버릴 뿐 감정에 대한 기억은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험한 일은 잊어버리더라도 그 경험에 따른 감정은 간직한다는 것이지요. 아이는 기억이 점점 지워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슬퍼하는 대신 할아버지를 기쁘게 만들 일을 궁리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동생이 되기로 마음먹죠. 동생과 헤어진 지 오래된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할 말이 무지 많을 테니까요.
아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공원 오솔길에 떨어진 비둘기 깃털을 모아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에 꽂고, 벤치 뒤에 숨어 인디언 추장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갑니다. 그러고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하지요.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고요. 할아버지는 모든 기억이 사라진대도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별이 또렷해지듯이, 기억이 지워질수록 사랑은 더욱 더 또렷해질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마법이 있으니까.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지 못하는 마법.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게 남는다는 걸
할아버지가 알려 주었다.
―본문 중에서
《안녕, 판다》의 질 바움과 바루 콤비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감동 이야기
《안녕, 판다》에서 진정한 나눔의 의미와 공존의 가치를 이야기했던 질 바움과 바루 콤비는 새 책 《할아버지의 시간이 지워져요》에서 할아버지의 치매를 소재로 또 한 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 줍니다.
두 작가는 섬세하고 따뜻한 글과 그림에 재미난 상징을 숨겨 두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시간이 지워진다.’는 글자는 여러 차례 반복되며 점점 지워지는 반면, 옆 페이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짧은 선들은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할아버지의 얼굴이 되어 갑니다. 마침내 글자가 거의 다 지워질 무렵,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또렷이 보이지요. 아이들은 지워지는 글자와 선명해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숨은 뜻을 찾고,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