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 다비드 칼리와 떠나는 짜릿한 시간 여행
방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다 오랜만에 발견한 어떤 물건 때문에 추억에 빠진 적이 있나요? 우리 삶의 한 부분을 따뜻하게 채워 주었던 물건들은 단순히 추억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우리를 다시 그 시절로 되돌려 놓아요. 열 살에 놀이동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열 살이 되어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리고, 스무 살에 받은 연애편지를 보면 풋풋한 청춘이 되어 얼굴을 붉히게 되지요.
이런 물건들은 우리를 그 시절뿐만 아니라 추억의 장소로도 되돌려 놓아요. 작은 방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놀이공원이 되고, 때론 봄바람 부는 캠퍼스가 된답니다. 이처럼 오래된 물건 하나 찾았을 뿐인데 순식간에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 순간을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거예요.
일상 속 유쾌함을 찾아 이야기로 만드는 작가 다비드 칼리는 이 마법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어요.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흐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넘나들지요.
벼룩시장에 참여하려고 다락방을 정리하던 주인공은 뜻밖의 물건을 찾아 길고 긴 여행에 나섭니다.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물건 하나를 집어 들고는 다락방을 내려옵니다. 그날 다락방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떤 것들은 오래될수록 빛난다
뭐든지 오래되면 낡기 마련이지요. 손때 묻고 먼지 쌓인 물건들을 보면 이제는 버려야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낡았다는 건 그만큼 함께한 세월이 길다는 뜻이기도 해요. 색이 바랜 자리 위로 추억이라는 색을 덧칠한 것이지요. 남들 눈에는 그저 바래고 해진 물건이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소중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요.
그림 작가 마리 도를레앙은 이 차이를 색채의 차이로 표현했어요. 주인공과 장난감 사이에 쌓인 시간을 아직 모르는 독자에게, 다락방 속 물건들은 낡고 바랜 물건일 뿐이에요. 어떤 것이 주인공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배경색으로만 칠해져 있지요. 하지만 주인공의 한바탕 신나는 놀이가 시작되면, 장난감은 추억의 색을 입습니다.
특징 없이 하나의 색으로만 칠해져 있는 물건들과 추억을 떠올리며 새로이 색을 입은 장난감의 대비가 주인공이 보낸 시간과 마음을 대신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걸 어떻게 팔아!” 하고 독자 역시 똑같은 한탄을 하게 돼요.
마리 도를레앙은 추억의 색을 노랑과 주홍으로 정의했어요. 우리 모두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겠지요. 여러분은 어떤 색으로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나를 담은 나의 물건들
여러분도 주인공처럼 더 이상 쓰지도 않는 낡은 물건을 버리지 못한 적이 있나요? 그건 그 물건들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가며 변해온 나의 삶을 찬찬히 되짚어 볼 수도 있지요. 나를 행복하게 했던 물건들을 보며 ‘나의 취향은 이렇구나’, ‘나는 이런 걸 할 때 즐겁구나’ 새삼 깨닫기도 하고요.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찾고는 어른의 체면이나 위엄 따위는 잠시 내려놓고 아이가 되어 신나게 노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지금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에게 남아 힘을 줄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어른들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잊어버렸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다시금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책을 읽고 나면 다시금 꺼내보고 싶은 물건이 퍼뜩 떠오를 거예요. 오늘은 그 물건을 보며 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