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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저자사인본) [봄볕] 품절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저자사인본)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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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저자사인본) [봄볕] 수량증가 수량감소 234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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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48쪽 272*310mm 624g ISBN : 9791193150184 / 2023-11-15


책소개

1795년 정조의 화성 원행을 기록한 의궤와 기록화, 그 밖의 회화와 지도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수원 화성에 들러 환갑잔치를 하고 돌아온 그 일련의 여행기를 아이들을 위해 다시 쓰고, 새롭게 그렸다.

본문만 보고는 정조의 행사에 대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림책 뒷부분에 넣어둔 부록을 보면 더 풍부하고 깊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부록을 통해서 본문에서 모두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알기 쉽게 구성하였다.

정조가 왜 화성에서 잔치를 벌였는지, 정조가 만든 화성 행궁과 화성을 축조한 이야기, 현재 사도세사와 정조의 능이 있는 현륭원에 대한 설명, 화성 행차를 기록한 책과 그림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설명, 혜경궁을 태웠던 왕실의 이동수단인 가마에 대한 설명, 궁중 잔치에서 공연되는 춤과 음악, 악기 등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보태어져 있다.


책속에서

'2년 뒤면 돌아가신 아버님과
홀로 되신 어머님이 회갑이구나.
(중략)
이참에 화성에서 간소하게나마 어머님을 위한
회갑연을 정성을 다해 열어 드려야겠다.'


저자 및 역자소개

윤민용 (지은이) 

어린 시절부터 그림책과 역사책, 지도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뉴욕에 체류하면서 박물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경향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대학원생 인턴으로 일했고, 지금은 조선 시대 궁중 회화를 공부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려 주고 싶어서 《여행길에 만난 국립 박물관》, 《역사가 숨 쉬는 우리 성곽》 등을 썼습니다.
최근작 :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역사가 숨 쉬는 우리 성곽>,<여행길에 만난 국립 박물관> … 총 3종 

이화 (그림)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성대학교에서 동양화와 진채 석사를 수료했습니다.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민화공모대전 특선, 한양예술대전 불화 부문 특선 등 여러 민화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감성민화연구소 대표로 LG 스마트 월드 홈테마, 월페이퍼, KBS, SBS, OBS 등 방송 삽화 작업을 하였으며, 민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민화협회와 한국진채연구회 회원으로 다양한 전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통에 숨겨진 재미난 구석을 찾아 온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점퍼 상품상세 이미지-S1L2

조선 최초, 국왕이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위해 떠난 궁궐 밖 7박 8일간의 행차

어머니 혜경궁을 위해 정조가 2년이 넘도록
효심을 담아 준비한 환갑잔치!
양로원, 과거 시험, 군사 훈련 등 백성들과 함께 치러 내는
성대한 잔치와 7박 8일간의 긴 여정.
이를 기록한 ‘화성원행도’를 지금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현해 내다.

* 이 책은 1795년 정조의 화성 원행을 기록한 의궤와 기록화, 그 밖의 회화와 지도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정조대왕 능행차를 통해 본 정조
지난 10월 초에 수원화성문화제의 하나로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행사가 있었다. 서울시 수원시 화성시 수원 세 군데에서 치러지는데 1997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행사이다. 조선시대 왕의 어떤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틀 동안 세 군데의 도시에서 치르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만큼 정조의 능행이 후대에 길이 남을 만큼 대단하고 놀랍기 때문에 지금까지 재현되는 게 아닐까.
정조는 세종대왕 이래로 백성을 살피는 성군이었고 극진히 어머니를 챙기는 효자였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임호화변(1762년)으로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뒤, 정조는 1776년 24세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여러 차례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 정적들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런 위험한 일을 당하면서도 정조는 정적들을 내치기보다 손을 내밀어 통합하려 노력했고, 백성을 돌보고 개혁을 이뤄내는 일에 더 힘을 쏟았다.
정조는 1789년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옮긴 뒤 11년 동안 총 13번의 능행을 다녔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오고 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그것도 왕의 행차라서 절차와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자주 찾아갔다. 그중에서 정조 즉위 19년인 1795년 을묘년에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수원 화성에 다녀온 8일 동안의 행차는 기록할 만한 대규모 행사였다. 당시 행차 준비 과정 및 행사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책으로 남긴 것이 바로 《원행을묘정리의궤》이다. 정조는 매우 꼼꼼한 왕이었다. 행사 전반에 대한 소소한 일까지 기록하고 그려서 후대에 남겨야 다음 왕이 어떤 행사를 할 때 도움이 될 거라 여겼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의 우리도 정조가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화성에서 성대하게 치러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원행에 대해 자세하게 풀이한 책은 몇 권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어른을 위한 책이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은 전무한 상황에서 봄볕에서 처음으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수원 화성에 들러 환갑잔치를 하고 돌아온 그 일련의 여행기를 아이들을 위해 다시 쓰고, 새롭게 그린 그림책을 출간했다. 바로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_화성원행도를 따라가 보다》이다.

화성원행도를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만들기까지
이 그림책은 민화를 그리는 이화 작가가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의 마지막 황실 잔치를 그린 ‘임인진연도병’의 한 장면을 따라 그린 것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왔던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잔치 장면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엮어야 할지 화가도 출판사도 길을 찾지 못하고 근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한 윤민용 박사에게 ‘임인진연’을 바탕으로 어떤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조언을 구했다. 윤박사가 작업에 합류하면서 이 그림책은 구체적인 꼴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윤박사는 조선시대 궁중 회화가 많지만 어린이를 위한 첫 책으로 내기에는 고종의 임인진연보다 정조의 ‘화성원행’을 시작으로 잡는 게 좋겠다고 했다. 조선시대 전체를 보더라도 정조의 화성 원행의 업적과 의의는 전무후무하여 충분히 기릴 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모든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한 화원은 정조가 도화서 소속 화원 중에서 별도로 시험을 쳐서 선발한 차비대령화원과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첫 권에 수록된 ‘반차도’ 판화를 조금 가까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조선시대 왕실 화가들이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 의궤에 수록된 반차도 판화의 밑그림은 여러 명의 도화서 화원들이 맡고,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화원으로 불리던 김홍도가 밑그림의 총감독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으로 그린, 정조의 화성 행차 7박 8일의 기록
윤민용 작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내용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기 작업을 했다. 정조가 어떤 마음으로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차려드리고 싶었는지와 구체적인 잔치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선시대 역사상 국왕이 어머니를 모시고 한양 밖으로 선왕의 능을 찾아 떠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성 밖에서 궁중 잔치를 여는 것 또한 처음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까. 정조는 1793년부터 이 잔치를 준비하라고 했다. 세금이 아닌 곳에서 경비를 마련했고 화성까지 가는 길을 정비했고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했다.
1795년 윤2월 9일 궁궐 밖 왕실 잔치를 위한 7박 8일간의 거대한 행차가 시작되었다. 정조는 말을 타고 혜경궁이 탄 가마 뒤를 따라갔다. 시흥 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이튿날에 정조는 어머니를 걱정하며 직접 미음을 올렸다. 비가 내려 길이 질었지만 저녁 무렵 화성 행궁에 도착했다. 윤2월 11일에 정조는 제일 먼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참배했다. 유생들에게는 특별 과거 시험을 보게 했고, 화성 향교도 참배했다. 12일에는 혜경궁이 현륭원을 참배하러 갔고 정조가 먼저 가서 어머니를 맞았다. 이날 오후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 훈련을 지휘했고 13일에 드디어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치렀다. 14일에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과 곡식을 나눠주고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열었다. 혜경궁과 같이 환갑을 맞은 이들, 7~80대 관료와 평민과 선비 등이 초대되었다. 오후에는 득중정에서 활쏘기도 하고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매화포를 터트렸다. 15일 한양으로 돌아오는 행차가 시작되었다. 오가며 애를 쓴 백성들의 노고를 생각하여 환곡을 탕감해주고 부역도 줄여주었다.
창덕궁에 돌아온 정조는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를 해체하라고 했고 후세를 위해 의궤를 제작하라고 명했다. 행차에 동원된 군인들을 창덕궁 춘당대로 불러 노고를 치하하는 작은 잔치를 열어주기도 했다. 6월 혜경궁의 생신을 맞아 창경궁 연희당에서 조촐하게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글과 옷감을 올렸다. 화성 원행은 역사상 유래 없는 특별한 행사였다. 정조의 명에 의해 기록된 글과 그림 덕분에 오늘날 사람들은 7박 8일간 열린 정조와 혜경궁의 잔치와 행렬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옛그림을 따라 그리고 새롭게 그리다
화성 행차를 준비하면서 관청끼리 오고간 문서와 임금의 명령, 진행 경과 등을 모두 꼼꼼하게 모아둔 것이 《원행을묘정리의궤》라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행사 그림을 따로 그린 것이 ‘화성원행도병’이다. ‘병’은 병풍 그림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성원행도’ 병풍과 채색필사본 ‘원행정리의궤도’를 바탕으로 우리 그림책 《197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_화성원행도를 따라가 보다》를 만들었다. 병풍에 없는 그림은 다른 그림을 바탕으로 새롭게 그렸다. 예를 들어 맨 처음 나오는 그림은 ‘화성전도’를 토대로 이화 작가가 새롭게 그린 것이다. 화성전도는 여러 종류의 그림이 남아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성전도’ 병풍을 기본으로 1795년의 상황을 추정하여 다시 그렸다. ‘봉수당진찬도’나 ‘낙남헌양로연도’, ‘향교알성도’ 같은 그림은 병풍과 다른 자료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따라 그리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롭게 그려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혜경궁이 현륭원을 참배하는 모습이나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춘당대에서 군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를 그린 그림은 조선 후기의 궁중기록화에서 배경을 따와 그린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동궐도’를 바탕으로 창경궁의 연희당에서 작은 잔치를 치른 것을 상상하여 그렸다. 이렇듯 우리 그림책은 1795년 화성원행을 기록한 조선시대의 의궤와 기록화를 따라 그리기도 했고 새롭게 해석해서 그리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화 작가의 그림은 기존의 민화를 똑같이 모사하는 방식과는 일정 부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장면처럼 기존의 화성전도를 토대로 봄기운이 나도록 초록빛 나무들을 더 그려 넣거나, 원 자료에는 없는 잔치를 구경하는 백성들을 더 그려 넣는 등 다양한 변주를 했다.

본문만 보고는 정조의 행사에 대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림책 뒷부분에 넣어둔 부록을 보면 더 풍부하고 깊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부록을 통해서 본문에서 모두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알기 쉽게 구성하였다. 정조가 왜 화성에서 잔치를 벌였는지, 정조가 만든 화성 행궁과 화성을 축조한 이야기, 현재 사도세사와 정조의 능이 있는 현륭원에 대한 설명, 화성 행차를 기록한 책과 그림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설명, 혜경궁을 태웠던 왕실의 이동수단인 가마에 대한 설명, 궁중 잔치에서 공연되는 춤과 음악, 악기 등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보태어져 있다.

정조의 행복한 행차의 역사적인 의미
한마디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정조 시대에 행해졌던 궁중 잔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궁중 회화, 풍습, 행사 관례 등등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이 그림책의 표지에 있는 그림을 또 다른 말로 ‘반차도’라고 한다. 반차도란 ‘궁중 행사를 치를 때, 의례에 투입되는 기물과 인물들의 배치와 순서를 기록한 그림’이다. 즉 반차도는 요즘으로 치자면 국가 행사 때 필요한 의전 배치도와 비슷하다. 예에 따른 통치를 내세웠던 조선시대에는 여러 행사와 의례를 실시할 때, 이런 배치도를 그려 미리 순서와 위치를 시뮬레이션하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이를 의궤에 수록하였다. 후세 사람 누구라도 유사한 행사를 의궤를 참조하여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기록물은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정조가 후세를 위해 남긴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원행도’ 병풍을 따라가 보면 당시 정조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이 궐 밖으로 나가는 것을 ‘행행行幸’이라 하고, 임금이 선조의 능에 가는 것은 ‘능행陵幸’이라 한다. 예로부터 황제와 왕의 행행은 정치적으로 파급력이 큰 이벤트로서, 조선 후기에는 국왕의 행차를 직접 구경하러 나오는 백성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왕과 백성이 소통하였다. 그 결과 왕이 행차할 때는 백성에게 반드시 은택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행복한 행차라 부른 것이다. 특히 정조는 행차 때 백성의 고충을 들어주며 여러 폐단을 없애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꿈에 그리던 아버지 사도세자를 현륭원에 모신 뒤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화성에서 치르면서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도 백성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으니 1795년의 능행, 아니 행행은 어느 누구보다 정조 본인이 가장 행복했던 행차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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